해마다 늘어나는 큰살림 ‘농기구’ 넓은 집보다 넉넉한 창고가 중요
시골살이를 준비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족을 위한 집을 꿈꾼다. 나 역시 그랬다. 이 때문에 건축관련 파일을 만들어 공사과정과 자재 등을 점검하고 틈틈이 자료를 모았다. 덕분에 두차례 집을 고칠 때 도움이 많이 됐고, 집을 지을 때도 직영으로 해서 비용을 30%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당초 66㎡(20평) 정도의 작은 집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주작목인 생강과 고구마 등을 썩지 않게 보관하려면 너른 공간이 필요해 베란다와 2층을 더하다보니 계획보다 집이 커졌다. 삶터는 이렇게 준비를 단단히 한 까닭에 지금도 부족함이 없지만 집을 짓고 나니 정작 아쉬운 건 창고를 비롯한 수납공간이었다.
농사를 한해라도 지어본 이라면 시골에서 창고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한다. 트랙터와 경운기 등 고가의 농기계를 눈비로부터 보호하려면 비가림 공간은 필수다. 게다가 호미와 삽, 포장재 따위의 농기구와 농자재는 왜 그리 많은지 도시와는 달리 바깥 살림이 해마다 불어난다. 시골살이 20년째인 지금은 이사를 하려 해도 곳곳에 쌓인 짐이 무서워 엄두를 내기 어렵다. 농기계만 해도 트럭으로 몇대 분량이니 말이다.
그래서 해마다 늘어나는 짐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비가림 공간마다 선반을 마련했다. 저온창고부터 공구실·자재창고·교육장에 각파이프와 합판으로 다단 선반을 들였다. 그래도 후배에게 줄 물품을 보관하다보니 아내의 시선이 곱지 않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가져가라는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쓰지도 않을 것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다른 농가도 우리 같진 않지만 온갖 것들에 치이며 사는 건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집을 새로 지으면 컨테이너를 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비닐하우스를 짓고 차광막을 씌워 창고로 전용한다. 경제적이기는 하지만 시골의 풍광을 살풍경하게 만드는 구도라 아쉬운 대목이다. 컨테이너를 창고로 쓰려면 지붕을 만들어야 하고 비닐하우스는 주기적으로 비닐과 차광막을 갈아줘야 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또 비바람이 불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긴 호흡으로 보면 주택과 어울리는 구조와 디자인의 창고가 바람직한 건 말할 나위도 없지만 살림이 팍팍한 대다수 농가로서는 희망사항에 가깝다. 하지만 농촌이 일본처럼 눈비 맞는 농기계가 하나도 없이 깔끔해지려면 정부와 농가 모두 정주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행정에서 농어촌주택 표준설계도를 무상으로 지원하듯 창고 또한 다양한 형태로 지원했으면 한다. 농기계 보관창고의 경우 표준설계도가 제공되고는 있지만 홍보 부족으로 아직 주변에 적용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나무·경량철골·비닐하우스 등으로 창고 구조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비가림 소재 또한 지금보다 다변화해 강판 외에 직조필름이나 타포린 소재, 윈치커튼 등을 조합해 설계도로 제시한다면 농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면 귀농인의 저가형 비가림 시설을 비닐하우스형 구조로 하고 25㎜ 각파이프 조립식 선반과 타포린 소재의 가림막과 윈치커튼, 슬라이딩 도어로 마감하는 형태다. 이사를 가더라도 비닐하우스처럼 분해와 조립이 쉬운 만큼 간편하고 경제적이지 않을까?
최근 통계에 따르면 농촌으로 향하는 이들이 2년 연속 30만가구를 넘어섰다고 한다. 참으로 고맙고 뒤가 든든하지만 동시에 후배들이 농촌현장에서 겪을 불편과 어려움에 걱정이 앞선다. 시골 어르신들이야 몸에 밴 검약을 실천하고 자녀들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셨지만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다. 시골로 삶터를 옮긴 지 5년이 지났어도 둘 곳이 없어 아직 도시의 짐을 채 풀지 못한 귀농·귀촌인들이 아마 드물지 않을 것이다.
농촌이 더 농촌다워지려면, 이른바 농촌만의 ‘어메니티(amenity)’로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안식을 주려면 지금의 좁고 낮은 공간으로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예부터 ‘곳간에서 인심 난다’ 했다. 마음도, 곳간도 넉넉한 여유가 없으면 인심 대신 짜증이 날 뿐이다. 살아보니 농촌에서 집보다 더 중요한 게 창고더라.
이환의<홍성귀농귀촌지원센터장>
< 출처 : 농민신문 >